‘걱정도 팔자다’ ‘걱정이 태산이다’ ‘걱정을 사서 한다’ ‘걱정이 많으면 빨리 늙는다’ ‘걱정이 반찬이면 상발이 무너진다’ 등 걱정과 관련된 속담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선조들도 과도한 걱정에 대하여 ‘걱정’을 하였다. 걱정 혹은 불안은 원래 개인이 어떤 위협에 대응하여 부정적인 결과를 줄일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는 순기능을 가지는 경고 신호로서 정상적 기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소한 일에도 너무 과도하게 걱정을 하거나 불안해하면 이는 병적이라 할 수 있으며 ‘범불안장애’라는 질환을 의심해봐야 한다.

47세 가정주부가 내과로부터 의뢰되어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에 방문하였다. 평소 메슥거림, 두통, 온몸이 쑤시고 아픈 증상을 호소하여 자주 내과나 가정의학과를 방문해서 검사를 받았지만 특별한 이상 소견은 없고 신경성이라는 말만 듣곤 하였다고 한다. 35세 때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부터 불면증과 함께 긴장하고 초조해하는 증상이 자주 생겼고, 이런 증상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1년 전부터는 불면증과 긴장감, 불안 초조감, 피로감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1년 전 환자의 딸이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부터 딸이 학교에서 남학생들로부터 위해를 당하면 어떡하나 하는 등의 걱정이 많이 들었고 하루에도 서너 번 딸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최근 3개월 전부터는 잠자리에 들면 머릿속에 걱정거리만 떠올라 잠을 못 이루는 등 불면증이 더욱 심해지고 자주 안절부절 못하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내는 일이 있어 내과의사로부터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위의 예는 전형적인 ‘범불안장애’ 환자의 경우로서, 이는 별로 불안해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사소한 일에도 너무 과도한 걱정, 이유 없이 불안한 느낌이 지속되는 정신과적인 장애를 말한다. 범불안장애는 수면 장애, 피로감 등이 자주 나타나고, 이로 인한 증상에는 짜증, 집중력 곤란, 안절부절 등의 심리적인 증상과, 허리, 어깨 등의 근육통 및 두통 등의 근육 긴장과 떨림, 가슴 답답함, 과호흡, 가슴이 두근거림, 흉부 통증 등의 자율신경계 과각성 증상 등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적이다.

범불안장애는 우울증과 더불어 1차 진료기관 환자의 5% 이상이 될 정도로 1차 진료 기관에서 가장 흔한 정신건강의학과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3분의 1만이 발병 같은 연도에 치료를 받고 나머지는 10년 이상 경과 후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게 되는 등 진료가 늦어지는 게 문제다.

그 이유로는 1) 신체 불편감을 흔히 동반하여 내과 등의 다른 과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경우가 높고, 2) 서서히 발병하는 특성 때문에 장기간 치료 없이 적응하며 생활하고, 3) 2차적으로 동반질환이 발병할 때까지 범불안장애를 인식하지 못하고, 4) 1차 진료기관 의사들의 진단 및 치료에 대한 인식 부족이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초기에 적절히 치료받지 못하면 범불안장애 환자의 50% 이상에서 우울증, 알코올 의존, 약물 남용 등의 합병증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기 진단 및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범불안장애의 원인은 다른 정신과적 질환과 마찬가지로 결국 뇌의 기능 이상이라 여겨지며, 특히 대뇌에 있는 GABA/벤조디아제핀 복합체의 기능 이상,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 글루타메이트, 뉴로키닌 등의 신경전달물질의 신경전달체계 기능의 이상 등으로 여겨지고 있다.

범불안장애는 그동안 정신건강 영역에서 그 진단 체계의 잦은 변화, 흔한 공존질환 및 흔히 치료가 잘 안 되는 질환, 질환 자체가 애매하고 규정 짖기 힘든 질환이라는 등의 편견으로 인해 임상 영역에서 별로 큰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진단이 더욱 명료해지고 안정화되었고, 최근 여러 약물치료의 장기치료 효과 및 안전성 등이 입증되면서 치료 영역에서의 큰 팽창을 이루어 임상적으로 관심이 급격히 증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대한불안의학회의 후원으로 한국형 범불안장애 진료지침 개발위원회를 구성하여 본인이 위원장으로서 ‘범불안장애에 대한 한국형 진료지침’을 개발하였다. 범불안장애에 대한 치료는 약물치료 이외에도 인지행동치료, 마음챙김 명상치료, 정신 면담 치료, 바이오피드백 치료 등이 있으며, 최근에 우수한 장기치료 효과와 부작용을 최소화한 안전성이 입증된 새로운 약물들이 개발되어 80% 이상의 환자들에게 있어 좋은 치료 반응을 보이고 있다.

걱정이 많음에도 그냥 팔자려니 넘기고 고통을 받는 것보다는, 너무 심한 걱정도 병이라는 인식을 갖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적절한 도움을 받아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