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최모(29)씨는 “여자 친구를 대할 때나 친구들과 만날 때 겉으론 웃고 친절하게 대하지만 가끔 공격적이고 반항하고 싶은 생각이 들고 욱할 때가 있다”며 “내 마음이 의지대로 조절이 안 되고 꼭 다른 사람이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각자가 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가며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그 가면을 바꿔 쓰기도 한다.
하지만 평생 가면 속에 숨어서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며 애인이나 가족, 친구나 동료들에게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또 자신도 몰랐던 모습이 나와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우리가 현실에서 사람들과 마주할 때 느끼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정신과에서 말하는 ‘이중인격장애’로 볼 수 있을까.
◇ 내 안의 또 다른 인격체, “넌 누구냐!”
영화 속에서 많이 등장하는 ‘해리성인격장애’는 말 그대로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성격 혹은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하며 R.L.B.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서 유래한 ‘지킬앤하이드 신드롬’이나 혹은 ‘다중인격장애’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가장 간단한 형태는 이중인격이고 그것이 더 많아져서 미국에서는 최고 14개의 인격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된 적이 있다.
줄여서 ‘해리장애’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증상의 원인은 유아기에 받은 폭력이나 성적인 학대 때문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이 외에도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 끔찍한 사고의 목격, 집단 괴롭힘 등 정신적 외상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은 아동이 자라면 자신의 정체성이 완전히 분리돼 두 개 이상의 뚜렷이 구별되는 독립된 인격을 가지게 되고 특정한 인격이 장악할 동안에 경험한 일들이나 인격의 존재 자체도 알지 못한다.
이런 각각의 인격이 잠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심각한 경우에는 몇 년씩 다른 사람과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살아가거나 드물게는 자신이 전혀 몰랐던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해리장애’의 일종인 ‘해리성 둔주’로 최근 SBS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주인공 소지섭이 극 중에서 총을 맞고 이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과 같다.
미국에서는 ‘해리장애’가 증가 추세에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실제 그렇게 많지 않고 자신이 이중인격 장애가 아닐까하고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대부분 인격 장애라기보다는 심리적 어려움에 처한 경우가 많다고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은 설명했다.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박두흠 교수는 “해리장애는 과거의 아픈 기억에 대한 방어기전으로 뇌의 어떤 부분에 이상이 생겨 유발되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며 “심리치료가 주가 되고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다양한 인격을 하나로 융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사람들이 정신과적 약물치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거나 계속 먹어야 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약을 이용하면 증상이 호전되고 치료가 가능하므로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정신분열?, 외상성 스트레스증후군? “헷갈려~”
사람들은 ‘정신분열증’의 ‘분열’이라는 용어 때문에 ‘해리성인격장애’와 다소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또 ‘외상성 스트레스증후군’과도 그 개념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
먼저 해리장애는 정신분열증과는 구별된다.
정신분열증은 망상이나 환청 등의 증상을 동반하며 일상생활이 힘들다는 것이 특징이지만 해리장애는 망상이나 환청의 증상이 없고 각각의 인격체에서 얼마든지 정상인처럼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이 다르다.
아울러 ‘외상성 스트레스증후군’과도 구별되는데 이것은 교통사고나 전쟁 등과 같이 평상시에는 경험할 수 없을 정도의 불안이나 공포를 겪었을 때 나타나는데 되도록 사고와 관련된 것을 피하고자 하는 행동이나 수면장애, 짜증, 불안을 그대로 표출하게 된다.
양산부산대병원 정신과 이상신 교수는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사람이 경적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악몽을 꾸는 것이 ‘외상성 스트레스증후군’이며 해리장애가 주로 정체성의 분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것은 정체성과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우리는 심지어 가족에게도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어느 한 사람과 잠시라도 부담 없이 마음속의 이야기를 나눈다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메디컬투데이 박엘리 기자 (ellee@mdtoday.co.kr) 블로그 가기 http://ellee.mdtoday.co.kr <건강이 보이는 대한민국 대표 의료, 건강 신문 ⓒ 메디컬투데이(www.mdtoday.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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